남겨진 장면 the scene left behind
박가희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단정하게 정돈된 화면과 파편으로 흩어진 조각들을 마주한다. 숨을 머금게 하는 고요함이 관람자의 움직임까지도 조심스럽게 만든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적막과 공기는 팽팽한 긴장으로 일렁이며, 마치 무언가가 막 휩쓸고 간 이후 혹은 막 일어나려는 찰나를 우리에게 예고하는 듯하다. 이 전시의 제목 《the scene left behind》는 바로 그 긴장의 결을 드러내는 첫 언어다. 이 장면(들)이 품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 장면(들)은 남겨졌는가.
전시는 마치 수면 아래에서 희미하게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는 일과 닮았다. 물결 위에서 빛이 굴절되어 선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손에 닿을 듯 어렴풋이 다가오는 어떤 형체처럼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나 또렷하게 드러나지도 않은 것 말이다. 이번 전시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바나 스툴리치(Ivana Štulić)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정인 두 작가의 조형 언어로 함께 만들어낸 자리다. 흥미롭게도 두 작가는 모두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며 ‘잔여물(residu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1] 이들에게 잔여물은 단순히 사건 후 남겨진 흔적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붙잡힌 장면이며, 그 속에 깃든 긴장은 우리를 그 장면 속에 멈춰 세운다. 이 잔여물처럼 남겨진 장면(들)은 이에 잠재한 시간과 감각 속에 우리를 머물게 한다.
두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교차시키고 쌓아 올리는 것은, 2024년 개관 이후 국내외 젊은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해 온 핌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핌 갤러리는 해외 갤러리와의 협업을 통해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를 매칭하여 서로의 작업이 대화를 이루는 2인전 형식을 지속했으며, 이번 전시 《the scene left behind》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창작 반경 속에서 활동하는 두 작가가 만들어내는 장면에는 놀랍도록 유사한 정서적 긴장이 스며 있으며, 서로 다른 매체의 언어가 교차하며 잔여물에 잠재한 감각을 드러낸다.
이제 전시장 벽면을 가로지르는 이바나 스툴리치의 회화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는 주로 인간의 형상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화면에 담긴 이미지가 나타나기 전 혹은 사라진 직후의 찰나를 포착하는 데 몰두해 왔다. 깨진 유리 파편과 헝클어진 사물이 놓인 선반 〈Consequence〉(2025), 제목이 아니었다면 포장하는 것인지, 푸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자와 종이봉투가 가득한 〈Unboxing〉(2025). 이러한 사물과 파편의 배치는 스툴리치가 즐겨 탐구하는 ‘찰나처럼 짧은 전환의 순간(fleeting moments of transition)’[2], 곧 변화가 일어나기 전후의 불안정한 순간을 시각화한다. 테이블을 둘러싼 세 인물, 무언가를 읽고 있는 손, 차를 젓는 손, 테이블에 기대어 있는 몸과 이를 지탱하는 손을 포착한 〈Expecting〉(2025)은 수많은 서사를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찰나의 시각성은 영화적 비율의 캔버스를 사용하는 작가적 선택으로 더 강조된다. 영화 스틸컷을 연상시키는 캔버스의 비율과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제거하고 특정한 순간만을 ‘크롭(crop)’해 드러내는 방식은, 큰 장면 중 오직 한 순간만을 응축해 보여줌으로써 관람자가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기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이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스쳐 지나가는 이 짧은 전환의 순간들은, 그의 화면 안에서 심리적 긴장을 만들어 내며 관람자에게 실존의 감각을 열어 준다. 스툴리치의 회화는 남겨진 것과 곧 사라질 것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포착하면서, 그 간극이 품은 무수한 가능성과 아직 오지 않은 이야기를 관람자 앞에 불러온다.
원정인 역시 일상에서 사건이 되지 못한 찰나의 시간과 정서를 포착한다. 스툴리치가 변화의 순간을 붙잡았다면, 원정인은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주목한다. 그는 아직 형체를 갖추지 않은 불안의 기운, 곧 어떤 일이 일어날 듯하면서도 여전히 일상의 표면 아래 잠복해 있는 긴장을 사물에 투영한다. 그의 이전 작업이 주로 사건이 지나간 뒤 남은 흔적과 그 잔재를 다루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사건이 도래하기 전의 미묘한 떨림을 탐색한다.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비극적 사건이 일상의 표면에서 금세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는 오래도록 남아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방식에 골몰해 온 그는, 이런 보이지 않는 시간과 잠재하는 감정을 흙이라는 물성을 이용해 가시화한다. 흙은 작가의 신체적 감각과 정서를 천천히 스며들게 하는 매개체이며, 열을 견디며 오히려 단단한 형태로 변하는 도자의 시간성은 사라짐과 지속, 기억의 역설을 그대로 담아낸다. 전시된 작품들은 이런 긴장을 촉각적으로 전한다. 차갑게 식은 철로 빚어진 하얀 식탁보 〈cloth〉(2025)나 자신의 몸을 지각해온 경험에서 빚어낸 작품 〈Vacuum〉(2023)은 손끝에 남은 감각과 함께 보이지 않는 불안과 잔여의 기운을 머금는다. 촉각으로 감지되는 신체적 각성과 묵직한 정서를 품는다. 작가에게 흙은 이처럼 개인적인 감각과 경험을 물리적 형체로 환원하고, 시간의 잔상을 양각하듯 담아내는 물질이다. 그에게 도자는 단순한 매체가 아니라 “정서가 고착한 사물의 모습”[3]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이며, “태우면 사라지는 대신 더 단단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시간성”[4]을 품은 재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빚어진 도자 표면에는 부드럽게 스민 불안과 잔여의 감각이 고스란히 머문다. 온기가 사라진 듯한 비어 있는 공간, 혹은 막 일어나려는 듯한 미묘한 떨림이 사물에 고착되며, 보는 이를 그 불안정한 경계 위에 세운다.
작품의 설치 방식은 전시장 전체의 동선과 맞물리며 서사를 공간 속에 이어 붙인다. 전시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전시의 입구에서는 실내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작업들이 먼저 관람자를 맞이한다. 그러나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바깥을 암시하는 이미지와 사물들이 나타난다. 예컨대 원정인 작가의 〈p-p.p〉(2021-2022)처럼 사이드미러에 비친 비 내리는 풍경의 변화를 암시하는 사물이나 이바나 스툴리치의 열차를 타고 떠나는 인물의 장면을 담은 〈Subway〉(2025)는 외부 세계를 불러낸다. 내부와 외부, 사건 이전과 이후가 교차하면서 긴장과 여운이 서서히 뒤섞이며, 한 공간 안에서 서로를 불러내며 보이지 않는 사건의 서사가 서서히 감지되는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이 전시는 두 작가가 구축한 진동하는 내면의 정서와 감각을 지나, 아무 일도 없는 듯한 표면을 지닌 외부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며 그 사이의 틈에서 불현듯 깨어나는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잔여물’이라는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는 두 작가의 만남은 필연처럼 느껴진다. 이미지와 사물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면서도, 그들이 붙잡고자 하는 것은 결국 단순히 남겨진 흔적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머물며 우리 앞에 현존하는 시간과 감각, 즉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으면서도 이미 어떤 힘을 지닌 상태다. 이 잠정적이면서도 충만한 현존은 미래의 가능성을 예감하게 하지만,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긴장을 품는다. 이바나 스툴리치와 원정인의 작업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은 완결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변화를 머금은 채 현존하는 이미지들이다. 이 전시는 그런 잠재적 순간들을 관람자에게 건네며, 미완의 시간을 감각하는 경험을 열어 놓는다.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현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면서 앞으로 열릴 수 있는 가능태 그 자체말이다. 관람객은 남겨진 장면 속 그 머무름이 가진 힘을 감지하길 기대한다.